2019년 6월 14일 금요일

끈밀어올리기

안녕하세요. 이원준 강사입니다.
2019학년도 6평 30번 ③의 해설에 대하여 쟁점이 있어 설명드립니다.



상당히 장문이 될 것 같습니다만, 결국 아래 두 명제로 요약됩니다.

명제 1 : 신용이 과도하게 늘어난 상황에서는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로 신용팽창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명제 2 : 그러나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가 없다고 신용팽창 문제를 완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 신용이란 대출을 의미합니다.

이 글은 위의 두 명제를 논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큰 틀에서는 지문에 제시된 문장과 개념만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만, 제시된 그래프 이해를 돕기 위해 '신용주기'라는 개념만 추가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글의 3, 4, 5문단은 끈 밀어올리기가 있을 경우에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로 완화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일단 <보기> 상황부터 분석해보겠습니다.


<보기>에 제시된 '끈 밀어올리기'란 현상은 지문 3문단에 제시된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한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이 자산 가격 버블에 따른 금융 불안을 야기하여 경제 안정이 훼손될 수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는 지문의 3문단과 동일한 상황입니다.



(지문 3문단 5-8행)

 '끈 밀어올리기'가 사실은 <보기>에서 새로 제시된 문제가 아니라 이미 지문 3문단에서 제시된 문제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5문단에 제시된 '경기 대응 완충자본 제도'가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해결책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경제 학계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만일 경기 대응 완충자본 제도가 2000년에 미리 도입되었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완화하거나 예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은행 내부에 적립된 완충자본이 있었다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더라도 은행들을 구하기 위해 사용해야 했던 공적 자금의 58%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 지문은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글입니다. 우리나라는 2015년에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경기 대응 완충자본 제도의 운영은 지문 5문단 1-3행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경기 변동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경기 변동과 금융 시스템 위험 요인 간의 상관관계를 감안하여 정해집니다.
  
(지문 5문단 1-3행)

 '끈 밀어올리기' 현상은 침체기에 확대된 신용으로 인해 '버블'이 나타난 상황으로 경기 침체기인 동시에 신용 팽창기로 보아야 합니다. <보기>에 제시된 '확대된 신용 공급'이 '신용 팽창기'를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면 이제 '신용주기'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신용 팽창기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신용 공급이 확대된 상황을 말합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에게 신용팽창기에는 경기 대응 완충자본을 적립하게 하여 신용 공급을 줄이고, 신용수축기에는 경기 대응 완충자본을 적립하지 않게 하여 신용 공급을 늘립니다.

아래의 그림은 전세계 금융감독기관이 따르는 금융감독의 표준 방식(바젤III)입니다.

신용주기와 경기대응완충자본의 운용 예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경기주기가 아니라 신용주기를 기준으로 운용이 이루어지며, 과도한 신용팽창이 이루어질 경우에 은행에 경기 대응 완충자본 적립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문 5문단 8-12행) 
지문 5문단의 8-12행에 제시된 설명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세로축이 경기주기가 아니라 신용주기라는 점에 주목해 주세요.

자, 이제 우리는 첫 번째 명제에 합의할 수 있겠습니다.

명제 1 신용이 과도하게 늘어난 상황에서는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로 신용팽창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그리고 끈 밀어올리기 상황은 곧 신용이 과도하게 늘어난 상황입니다.
이때 신용팽창으로 인한 문제란 자산 가격의 급득, 즉 버블을 지시합니다.
따라서 명제 1은 명제 1-1과  같이 재진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명제 1-1 끈 밀어올리기가 있을 경우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로 신용팽창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개념 정의상 끈 밀어올리기 상황은 본질적으로 '경기 침체기'를 전제합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경기 침체기에서'라는 부사어를 추가해도 명제의 진위에는 영향이 전혀 없습니다. 즉 명제 1-1과 명제 1-2는 동치입니다.

명제 1-2 끈 밀어올리기가 있을 경우 경기 침체기에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로 신용팽창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그런데, EBS 측은 홈페이지에 공개한 해설에서 경기 침체기에 경기 대응 완충자본 제도는 신용 공급을 확대할 것이고, 그로 인해 버블이 발생해서 금융 안정을 오히려 해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020학년도 6평 국어 30번 EBS 해설) 

EBS 해설에서 '확대하더라고'는 '확대하더라도'의 오타로 보입니다. 시간이 없어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것 같군요.

이 해설에서는 시간적으로 끈 밀어올리기는 이미 자산 시장의 버블이 발생한 상황인데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로 인해 버블이 발생할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굳이 말한다면 '버블이 증가할' 것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미 발생한 버블이 또 발생하지는 않을테니까요. 증가와 발생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결정적으로, 지문 3, 4, 5문단에서 논의되는 것이 침체기에 발생한 버블, 즉 끈 밀어올리기 현상의 부작용을 어떻게 완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설명인데, 끈 밀어올리기가 있으면 금융 안정을 달성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해 놨습니다. 이는 지문 4, 5문단을 완전히 무시하는 잘못된 해설입니다.

지문 5문단 5-8행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는 신용 공급 팽창으로 인한 자산 가격 급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효과, 즉 경기순응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지문 5문단 5-8행) 


 백번 양보해서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를 잘못 운용해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의 도입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지 ③은 경기 대응 완충자본 제도의 도입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지 적립된 완충자본의 사용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③ '끈 밀어올리기'가 있을 경우 경기 침체기에 금융 안정을 달성하려면 경기 대응 완충자본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겠군.

만일 EBS 측의 주장이 옳다면 다음과 같이 진술되었어야 합니다.

③-1 '끈 밀어올리기'가 있을 경우 경기 침체기에 금융 안정을 달성하려면 적립된 경기 대응 완충자본의 사용이 필요하겠군.

그럼 왜 ③이 틀린 선지일까요?


명제 2가 참이기 때문입니다. 

명제 2 : 그러나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가 없다고 신용팽창 문제를 완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저는 이 선지가 틀린 이유는 금융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 거시건전성 정책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꼭 경기 대응 완충자본 제도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문에서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 수단으로는 경기 대응 완충자본 제도를 하나의 예로서 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때 '들다'가 설명을 위한 예를 제시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31번 어휘 문제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밑줄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문에 경기 대응 완충자본 제도가 거시건전성 감독을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라는 언급은 없습니다. 단지 거시건전성 감독 정책수단 중 하나의 예로 제시되었을 뿐입니다.

아이돌 중에서 트와이스를 예로 들 수 있다고 해서 트와이스가 아니면 아이돌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에이핑크와 블랙핑크 등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거시건전성 감독 수단은 사실 다양합니다.  아래의 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금융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 꼭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가 없다고 해서 금융 안정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수단을 통해서도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필요하겠군'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금융감독원, <금융감독개론>, 46쪽) 


기타 쟁점들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이하 CCyB)에 대한 다음 쟁점들도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a. CCyB로는 개인의 심리를 바꾸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신용 팽창으로 인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 굳이 개인의 심리를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버블 발생을 처음부터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버블의 팽창을 완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b. 이제 CCyB를 도입해 봤자 적립이 안 되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는 것 아닌가?
신용팽창을 막으려고 할 때는 CCyB 적립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므로 적립된 CCyB가 없어도 됩니다.


c. CCyB만으로는 금융안정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선지 ③은 CCyB가 금융안정의 필요조건인지를 따지는 것이지 충분조건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d. 필요조건을 골치 아프게 굳이 따질 필요가 있는가? (나의 국어는 이렇지 않아...)
선지 ④에서도 필요조건을 따지고 있습니다. 이 선지에서는 끈 밀어올리기 해결을 위해서는 거시 건전성 정책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거시 건전성 정책의 도입으로 인한 부작용을 논의하는 것이 이 문제의 출제 의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거시 건전성 정책의 도입을 통해 통화 정책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려고 하는 겁니다. 따라서 CCyB의 부작용만 언급하고 있는 EBS 측 해설은 ④를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③에서는 통화 정책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존의 정책만으로는 안 되니까 거시 건전성 정책의 도입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CCyB의 도입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물어보고자 한 것입니다. CCyB는 여러 거시건전성 정책의 하나이지, 유일한 정책이 아니니까요. 
정교하게 독해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e. 지문 내용상 경기 침체기에는 적립된 CCyB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문에서는 경기 과열기에 CCyB를 적립한다고 했지, 경기 과열기에만 CCyB를 적립한다고 하지 않았고,
적립된 CCyB를 침체기에 쓴다고 했지, 침체기라면 무조건 적립된 CCyB를 써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급식을 학교에서 먹는다고 했다고 학교에서는 급식만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기 침체기라 하더라도 신용 팽창기라면 CCyB를 적립할 수 있습니다.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 감독정책은 모두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정책이지만 양자 간의 상충 관계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금리의 인상이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되면 CCyB 적립의무를 해지시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금리의 인하가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되면 CCyB 적립의무를 부과시킬 수 있습니다.

한줄요약 : CCyB로 버블을 완화할 수 있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