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5일 일요일

적성시험을 대비하지 못하는 국어교육 전문가들

안녕하세요. 이원준입니다.


제가 이번주에 교보문고에 가서 국어교사 임용고시 책들을 찍어봤습니다.
두 칸이 국어교사 임용고시를 위한 책들이더군요.





문학과 문법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국어교육학이 있기는 하지만
교과통합적인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가르치는 내용을 찾아보기는 어렵더군요.


즉, 현재 우리 국어 교육과정은 특정교과적 내용소재에서 하능정신능력 위주로 강의가 편성되어 있고,
통합교과적 내용소재에서 고등정신능력 위주의 강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육과정평가원의 연구자료에서도 아래와 같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 결과로 학생들은 기계적 암기에 익숙해지고 고등정신능력을 물어보는 문제를 만났을 때 다음처럼 당황스러워 합니다.





그리고 수능이나 PSAT, LEET와 같은 적성평가들에 대해 국어교육전문가들은 굉장히 불편해 합니다.
왜 문학, 어휘, 어법을 많이 물어보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관련 논문을 퀴즈로 꾸며봤습니다.





Quiz 김명석, PSAT 언어논리영역의 성격과 성과, 국어교육학회(2007)

다음 글에서 추론할 수 있는 국어교육 전문가들의 암묵적인 가정이 아닌 것은?

국어교육 전문가들은 PSAT 언어논리의 한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문제가 너무 어렵고 사변적이다. 지문이 문학적이지 않다. 국어 문법, 어휘 등도 평가해야 한다. 문학적 이해 및 표현 능력도 평가해야 한다. 표현능력이 굳이 논리적일 필요는 없다. 실질적 글쓰기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논리적 분석은 일상적 의미를 왜곡한다. 형식논리에 집착하는 측면이 있다 등
 
문제는 너무 어렵지 않아야 하고 사변적이지 않아야 한다.
지문은 문학적이어야 하고, 문법과 어휘도 중요하다.
우리들은 비판적 사고를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퀴즈의 정답은 댓글로 달아주세요)


국어교육 전문가들은 적성평가가 '논리'에 집착한다고 투덜대지만, 저는 오히려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왜 국어교육 전문가들은 '문학'과 '지식'에 집착하는 걸까요?
논리교육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PSAT나 LEET 지문이 문학적이지 않은 것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됩니다.


   
 

“문학 작품을 일반적인 정보적인 글로써 읽는 일이라면 대학 졸업생 수준의 고급 언어사용자들에게 물어질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인지가 늘 논란되었다.”
 (민찬홍(2013), 『사고력시험으로서의 LEET』)


출처 :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103

 
   




최근 교총에서 수능을 학력고사로 바꾸자고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한국교육단체 총연합회 (교총)은 수능은 문제은행식 국가기초학력평가로 전환해서 현재 능력에 대한 사실적인 지식 위주의 기초능력 평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통합적 사고력은 내신과 학생부로 측정하고, 전공교수 중심으로 면접을 시행해 학생의 미래잠재력을 측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출처 : http://www.nocutnews.co.kr/news/4332645)

 
   


이는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며 교육수요자보다는 교육공급자의 이익을 위해서 교육하겠다는 것입니다.
수능의 아버지 박도순 교수에 따르면 수능을 학력평가로 되돌리는 것은 수능을 망가뜨리는 것이고 학과 이기주의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박도순 교수 : 수능이 이렇게 망가질 줄이야...수학능력시험이 처음에는 말 그대로 교수와 학생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능력, 그리고 학문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논리적 사고력, 이런 것 중심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 나왔을 적에는 아마 생소한 용어지만 탈교과적, 범교과적인 출제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적성검사의 본질은 '능력'평가인데 자꾸만 '지식' 평가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학과 이기주의와 편의주의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국어교육 전문가들은 수능 국어에서 물어보는 능력의 범위를 확장시키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초기의 범위(짙은 색)에서 현재의 범위(연한 색)으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고
과목의 이름도 '언어'에서 '국어'로 바꾸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통합교과적 공부가 강조되고 있는데 반해, 꾸준히 특정교과적 공부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교평  ORM 2009-22)


초기 수능언어에 비해 지금 수능 국어는 지식시험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특히 EBS연계를 통해 EBS교재지문과 문제를 암기하게 한 것은 비판적 사고력을 압살하는 교육정책이었지요.


올해 3월에 수능개선위원회가 대통령의 지시대로 '수능의 본래 취지'로 돌아가려고 한다면
지나치게 확장된 수능 국어의 영역을 다시 축소시켜서
'통합교과적', '사고능력' 시험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험을 대비할 수 있도록 학교교과과정을 개편하고
임용고시도 그런 교과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인재로 선발할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하며,
기존의 국어교사들도 다시 재교육시켜야 할 것입니다.
토론이나 논술도 막연하게 해보는 자체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규칙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도하고
규칙에 따라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학교에서 국어 교사가 기본적 토론, 논술 교육 정도는 제대로 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래 수능의 이름은 '대학교육적성평가'였습니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수능 국어와 영어는 아직 통합교과적인 면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수능 국어는 분명 적성평가인데 이를 지식평가라고 부르는 것은 '지록위마'가 아닌가 합니다.
수능은 적성평가입니다!
 

2015년 1월 16일 금요일

출제오류 시리즈(1) - 2004년 수능국어 17번


안녕하세요. 이원준입니다.

예고했던 대로, 수능과 리트의 출제오류들을 정리해보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우선, 2004년 수능국어 17번의 출제오류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문제부터 보여드립니다.

 (가) 고향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어느 아츰 ㉠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드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띄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17. (가)의 ㉠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보기>에서 고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비밀의 방에 이르고자 한다. 비밀의 방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있다. 미궁을 통과하는 길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미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고 열리는 문이다. 테세우스는 미궁의 문을 찾아 실 끝을 미궁의 문설주에 묶어 놓은 뒤 자신의 예지와 본능으로 미로를 더듬어 비밀의 방에 이른다.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인 후 을 따라 무사히 밖으로 나온다. 이 '미궁의 신화'는 문학 예술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① 테세우스 ② 미노타우로스 ③ 미궁의 문 ④ 비밀의 방 ⑤ 실 



처음에 제시되었던 답은 ③이었지만 나중에 문제가 되자 ⑤도 복수정답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 글은 다음 두 가지 의문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1) 왜 출제위원은 ③을 정답이라고 주장했었는가?
(2) 왜 ⑤도 복수정답으로 인정되었는가?


(1) 왜 출제위원은 ③을 정답이라고 주장했었는가?

 17번 문제에 대한 출제위원의 해설은 교평에서 공개했습니다.
출제위원의 해설은 너무 길어서 '참고자료1'로 뒤에 따로 싣습니다.

출제자는 '들어가다' vs '나오다'라는 이항대립에 따라 이 문제를 구상했습니다.

해설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가)의 시에서 '나'는 '고향'에 가고자 하고 '의원'은 고향에 가는 매개가 됩니다.
<보기>에서 테세우스는 미궁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따라서 <보기>에서 '의원'의 역할과 가장 유사한 것은 '문'이라는 논리입니다.
실은 나중에 미궁에서 빠져나올 때 필요한 것이지 들어갈 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나 - '의원' - '고향' 
= '테세우스' - '미궁의 문' - '미궁의 방(비밀의 방)'

따라서 '㉠의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은 '③ 미궁의 문'이라는 해설입니다.



(2) 왜 ⑤도 복수정답으로 인정되었는가?

​그러나 테세우스는 마노타우로스를 죽인 후에는 밖으로 나가려고 할 것입니다.
'백석'의 시에서도 '나'는 고향을 떠나 향수병으로 인해 몸이 아픈데 이는 마치 미로 속에 빠져 있는 상태와 유사합니다.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문'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은 문에 도달하는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따라서 정답이 실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입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나 - '의원' - '고향' 
= '테세우스' - '실' - '미궁의 문'

따라서 '㉠의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은 '⑤ 실'이라는 해설입니다.

 



한편, 테세우스가 미궁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고 해석할 경우에도
'미궁의 문'이 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나 - '의원' - '고향' 
= '테세우스' - '미궁의 문' - '미궁의 밖'

따라서 '㉠의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은 '③ 미궁의 문'이라는 해설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해석은 모두 타당한 근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보기>에 대한 다음 세 가지 해석 중 어느 한 쪽이 옳다고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목적지 (고향) 
 정답
 미궁의 방(비밀의 방)
 ③
 미궁의 밖
 ⑤
 미궁의 문
 ③



따라서 교평에서도 복수정답을 인정했고, 법원에서도 이를 인정하였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수능 언어 17번 복수정답 인정 타당" (이광철기자)
2004년 수능에서 복수 정답 논란을 일으킨 언어영 역 17번 문제에 대해 법원이 복수정답이 인정된다고 판단, 논란을 사실상 매듭지었 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조해현 부장판사)는 8일 김모 군등 ③번 정답자 460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상대로 낸 복수정답인정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기각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다양한 의미의 함축과 어느 정도의 해석의 개방성이 필연 적일 수밖에 없는 시의 특성상 백석의 시 「고향」에서 `의원'과 보기의 `실'이 아 무런 기능적 유사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그 유사성에 관해 나름의 논리 적 근거가 제시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관건이 되는 것은 테세우스가 어디로 가려고 했느냐입니다.
이를 확실하게 '미궁의 방(비밀의 방)'으로 확정시켜줄 수 있다면 출제자의 의도를 살려 복수정답을 없앨 수 있습니다.

 테세우스
 정답 
  들어가다.
 ③
  나가다.
 ③ 또는 ⑤



따라서 이 문제를 출제자의 의도에 맞게 수정하면서 함정을 감추려면
<보기>에서 '들어가려 한다'는 정보만 주고 '나가려고 한다'는 정보를 주지 않으면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밖에 나왔다는 문장을 삭제해 버리면 됩니다.
(밑줄 위치는 옮기구요)

(이원준 강사가 복수정답이 나오지 않도록 수정 - 한 문장 삭제)

17. (가)의 ㉠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보기>에서 고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비밀의 방에 이르고자 한다. 비밀의 방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있다. 미궁을 통과하는 길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미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고 열리는 문이다. 테세우스는 미궁의 문을 찾아  끝을 미궁의 문설주에 묶어 놓은 뒤 자신의 예지와 본능으로 미로를 더듬어 비밀의 방에 이른다.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인 후 을 따라 무사히 밖으로 나온다. (삭제) '미궁의 신화'는 문학 예술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① 테세우스 ② 미노타우로스 ③ 미궁의 문 ④ 비밀의 방 ⑤ 실 

교평 출제위원의 해설을 보고 싶은 분은 아래 참고자료1을 읽어보세요.
불필요할 정도로 길게 서술했는데
요지는 '들어가다'와 '나오다' 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자료1)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관리부입니다. 
17번 문항에 대해 11.12(수)에 이미 답변을 하였으나, 여러 수험생의 문의가 많이 들어와 
출제위원의 답변을 다시 한번 올려드립니다. 

백석과 이 문항에 대한 관심을 가져 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립니다. 
백석의 [고향]은 시인의 감정이 절제된 좋은 시입니다. 
백석은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을 제한하고, 
사물의 객관적인 외양이나 형태를 어쩌면 무미건조하게까지 제시, 나열하거나 보여주는 시
를 쓰곤 했습니다. 
'고향' 하면 떠올리는 센티멘탈리즘, 향수병, 지나친 감읍벽 같은 것이 이 시에는 거의 없습
니다. 
[고향]은 북관에서 혼자 앓아 누운 시적 화자의 외로움과 고독감이 깊은 울림을 주는 시입
니다. 시적 화자의 병은 깊고 깊어서 매우 위태로워 보이지만 이 시에는 절규나 비명이 없
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평상심인 듯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면에 숨겨진 그의 향수병은 이미 측정치를 넘어서 있었을 것입니다. 
시인은 고향 정주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뼈에 사무치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시인은 오래 혼자 앓다가 의원을 찾습니다. 옛 한의들이 그러하듯 의원의 풍채는 신선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약이 아니라 마음으로 병을 고친다는 동양 의법을 증명이라도 하듯 병자의 맥을 짚는 의원
의 손길은 섬세하고 따뜻합니다.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은 분명 신선의 손이지요. 
그는 병의 원인과 치유법에 대해 말하는 대신 병자에게 고향을 묻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시인과 한의의 대화가 이어지는 시간은 시인이 고향을 떠올리고 그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한 시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의원의 기능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보기> 지문에서 테세우스의 목표는 분명 비밀의 방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도 시적 화자가 이르고자 하는 것은 '고향'입니다.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고향으로 가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어 화자는 앓아 누웠던 것이지요. 화자는 의원을 찾습니다. 
의원과의 대화를 통해 화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얻게 됩니다. 
의원은 고향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입구, 문과 같은 기능을 한 것이지요. 
의원은 화자의 병이 향수병이며 그 병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대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의원은 그 계기를 제공해 줍니다. 
시에서도 '북관/고향'이 선명하게 장면 전환되는 것도 바로 '의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관', '고향' 사이의 '막'(거울)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즉 '북관'에서 '고향'으로 가는 '
문'의 기능이지요. 의원을 만나지 않았다면 화자는 고향을 찾지 못했겠지요. 
그리고 고향도, 아버지도, 친구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관/고향'은 이원적으로 존재해 있지만 '의원'은 이 공간을 연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 것입니다. 
계기만 주어지지 그 길을 통해 고향을 찾는 것은 전적으로 시적 화자의 몫입니다. 

테세우스가 비밀의 방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은 미궁입니다. 
미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궁의 입구인 문을 찾아야 합니다.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밀의 문은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고 열린다'고 했습니다. 
그 문을 찾고 나면 테세우스 저 스스로 지혜와 본능으로 미궁을 더듬어 비밀의 방에 이르러
야 합니다. 의원의 기능도 마찬가지로 그 길을 발견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의원이 질문하고 시인이 대답하는 시간은 바로 시적 화자가 그 길에 들어서기 위한 마음의 
준비이며 의지의 확인인 셈이지요. 

여기서 실이 문제가 됩니다. '실'은 '구명줄', '인도'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우
리의 머리 속에 선지식으로 남아있는 어떤 잔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테세우스의 신화에서도 '실'은 미궁으로 들어가 비밀의 방을 찾는 역할을 하는 데 강조가 
주어지기보다는 나중에 미궁을 빠져나오는 데 필요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혹은 아리아드네와의 사랑의 성사 여부나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의 슬픔이라는 
모티프를 활용하기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문제의 <보기>에서 실은 분명 비밀의 방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역할보다는 나중에 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비밀의 방에 이르기 위해 테세우스는 '자신의 예지와 본능으로' 미궁을 더듬어 가고 나중에 
실을 따라 밖으로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시문에서 '실'은 목표를 성취하는 데 주기능이 있지 않고 목표를 성취한 이후의 또 다른 
장면에서 부수적이면서 도구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어떤 과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가 되는 문(입구)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은 우리의 설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지하 대적 퇴치 설화'의 유형이 그것인데요. 지역마다 약간의 변용이 있
습니다만, 핵심은 그 과제를 해결하는 관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굴로 가는 문을 찾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들어갈 때 들고 가는 밧줄은 나
중에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지요. 단지 수단일 뿐입니다.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백석의 시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이 답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보처리적 읽기(3) - 온톨로지와 리터러시 교육


안녕하세요. 이원준입니다.

요즘 논리톡클을 화요일에 연재하기 어렵네요.
앞으로 연재일을 매주 목요일로 옮길까 합니다.

오늘은 예고드렸던 대로 정보처리적 읽기 관련해서 온톨로지와 리터러시 교육을 다루려고 합니다.
서로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주제는 이 글의 마지막에 조화롭게 결합할 것입니다.

(1) 온톨로지 (ontology)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어는 오랫동안 사용되어 정교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애매하고 부정확한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함께 생활하면서
경험을 통하여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확인하지 않고도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소설에는 맞선 중에 남자가 '참치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참치 좋아하세요?


 
   



남자의 질문 의도가 편의점에 가서 참치캔을 먹자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아주 짧은 말이지만 다음과 같이 복잡한 정보가 전달되고, 여자는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머리가 복잡할 것입니다.

(1) 이 근처에 자신이 아는 참치 횟집이 있다.
(2) 내가 이 비싼 음식을 당신을 위해 계산할 용의가 있다.
(3) 따라서 나는 당신에게 호감이 있다.

그런데 만일 여자가 외국인이었다면 정보 교환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함께 생활하지 않으면서 교류가 적은 사이에는 복잡한 내용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생활 관습이나 용어 선택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개념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복잡한 공항의 관제사와 조종사들이 이착륙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려면
규약에 따라서 명확하고 정형화된 표현을 필요한 만큼 상세하게 기술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기계가 정보를 교환하고 작업을 수행하려고 한다면
사람끼리의 대화에서보다 더 엄격한 용어로 정확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실 '정확한 단어'를 쓰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글 잘쓰는 비결을 유시민 씨는 정확한 단어를 쓴 글을 많이 읽는 것과 많이 써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온톨로지는 철학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구성요소들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려는 학문입니다.
모든 존재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존재에 대하여 명확하게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이를 '개념화'라고 하고 '이항대립'에 기반해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용어들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를 기계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개념화'가 필요합니다.
사람과 기계 사이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정보처리학에서는 '온톨로지'를 철학에서 빌려왔습니다.
칸트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업적이 컴퓨터 공학의 기반이 된 것입니다.
(정보처리적 읽기 (1), (2) 참고)

정보처리학에서 온톨로지는 '명백하고 정형화된 방식으로 관심있는 영역을 개념화하는 것'이라고 정의됩니다. (Gruber)

다음 그림은 컴퓨터가 온톨로지를 이용해서 '개념화'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위 논증의 전제를 일상언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제1) 박은 영업계획서 B를 읽을 권한이 있다.
(전제2) 김은 박의 상사이다.
(결론) 김은 B를 읽을 권한이 있다.

영업계획서 B는 문서이고 박과 김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만 제시되어서는 컴퓨터가 추론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두 개념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온톨로지 용어 중에는 분류적인 용어와 비분류적인 용어가 있습니다.
분류적인 용어는 개념 간의 포함 관계를 나타냅니다.
'사자는 동물이다'와 같은 경우 사자는 동물에 포함됩니다.
이때 '는 ~이다' (is a)는 분류적 용어에 해당합니다.

한편 비분류적 용어는 포함관계를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인과관계(cause-Of), 개체관계(instance-Of), 부분관계(part-Of) 등이 그렇습니다.

'박은 B를 읽을 권한이 있다'에서 '읽을 권한이 있다'는 비분류적인 용어입니다만,
우리는 이를 적절하게 수정하여 분류적인 용어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B는 박이 읽을 수 있는 문서이다'로 바꿔주면
컴퓨터가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용어들을 개념화하면서 정의해주면, 컴퓨터는 일상언어들을 받아들여서 추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전제1) 박은 영업계획서 B를 읽을 권한이 있으므로 영업계획서 B는 박이 읽을 수 있는 문서이다.
(전제2) 상사는 부하가 읽을 수 있는 문서를 읽을 수 있다. 김은 박의 상사이다. 따라서 박이 읽을 수 있는 문서는 김도 읽을 수 있다.
(결론) B는 김이 읽을 수 있는 문서이다.

즉, 온톨로지란 '정확한 정보 교환과 처리를 위해 개념을 정의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의 본질은 '증명기계'입니다.
방금 예로 든 사례는 상식적으로도 추론할 수 있지만 '유클리드 기하학 명제 증명'은 상식적으로 추론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온톨로지를 갖춘 컴퓨터는 '유클리드 기하학 명제 증명'도 자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 구체적 맥락 속에서 고도로 훈련된 의사가 내릴 수 있는 임상적 의사결정까지도 모방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와 정확성을 자랑하면서요.


(2) 리터러시 (literacy) 교육

리터러시는 '문해' 또는 '독해력'을 말합니다.
21세기에는 정보소통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창의적,융합적 독해교육이 필요합니다.
이를 STEAM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초등학교 교육의 일환으로 주제통합 교육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초등학교 전체가 다 주제통합 교과과정으로 변화하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초등학교 교사들은 교과서 기반 활동에 초점을 둔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구체적 방안이 없는 혼란 속에서 암기 위주의 교과서 기반 학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근 제는 국어 교사 임용고시 참고서를 살펴보면서 '비판적 사고력' 훈련을 위해
필요한 내용은 수박 겉핡기 식으로만 제시되어 있어서 깊이 한탄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우리나라 국어 교육의 미래가 암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어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변해가야 할까요?



현재 전세계 국가들은 글로벌 경쟁을 위해 리터러시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리터러시 교육의 표준이 되는 것이 OECD에서 평가하는 PISA와 미국 교육 당국이 평가하는 CCSS입니다.
교육의 대상을 교과목 교과서에서 다양한 매체로 바꾸고,
교육방법도 교사 주도형 암기식 수업에서 학생 주도형 융합 탐구 수업으로 바꾸는 것이
리터러시 교육이 제시하는 변화의 방향입니다.
교사주도 티칭에서 학생주도 코칭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런 변화들이 '임용고시'에 더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하고
기존 교사들은 '비판적 사고력' 교육을 반드시 재교육받아야 합니다.
현재처럼 국어를 교과목의 하나로 취급하는 교사 양성 시스템으로는 '리터러시' 교육을 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미국의 CCSS는 "언어 리터러시 학습은 모든 교과 콘텐츠의 핵심이다"라는 설명으로 교과목 지식의 통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CCSS에서 강조하는 스킬은 다음 네 가지입니다.


논리적,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위에서 살펴본 온톨로지를 통한 '개념화'와 '추론' 기술과 거의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효과적으로 학습하기 위해서는 인지학습이론에 기반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보처리이론은 기억의 구조와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컴퓨터의 정보처리 과정에 인간의 정신과정을 비유한 것입니다.
컴퓨터는 기호를 입력하고, 연산자를 사용하고 산출물을 만들어내는데,
인간도 컴퓨터처럼 숫자와 문자를 기호로 사용하고(입력), 문제를 풀며(연산), 해답을 만듭니다(출력).


정보처리모델에 기반해서 본다면, 컴퓨터와 인간의 정보 처리 과정은 매우 유사합니다.
따라서 21세기 정보화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리터러시 교육은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처리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컴퓨터가 그렇듯이 온톨로지를 수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개념화' 훈련은 적성시험을 대비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아래 문제를 한번 살펴봐요. 연세대학교 논술문제입니다.


낙관적이라는 말과 대립적인 말은 현실적이 아니라 비관적입니다.
미래를 실제 일어날 일에 기반해 생각했을 때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낙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따라서 낙관적인 사람이 반드시 비현실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항대립적으로 '낙관적'이라는 개념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온톨로지'가 추구하는 바인 동시에 '리터러시'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즉 '온톨로지' 교육은 '리터러시' 교육에 적합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공교육 언어수업은 리터러시 학습을 위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갖추지 못한 채
여전히 기존의 지식전달형 교육 방식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논리학자이자 교육자인 존 듀이의 명언은 지금 한국의 교육 현실과 정확하게 대응됩니다.
   
  
"오늘의 학생들을 어제처럼 가르치면 이는 학생들의 미래를 빼앗는 것이다."
(If we teach today's students as we taught yesterday's, we rob them of tomorrow.) 
 
   

다음주부터는 수능, 리트, 피트 등 언어문제의 출제오류들에 대해 다루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