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7일 월요일

2017 수능 국어를 포스텍 총장이 풀어보았다.

오늘 조선일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26/2017022601706.html

김도연 총장님은 수능에 대한 분노감을 표출하시면서 수능은 사고력 시험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이틀 뒤 나는 국어 수능문제지를 풀어봤다. 16~20번에 주어진 지문은 문장이 엉망이라 독해가 안 됐다. 더 해볼 의욕이 떨어졌다. 시험 시간의 절반인 40분 만에 손을 들었을 때는 겨우 15문항을 풀었다. 할 말이 없게도 다섯 개나 틀렸다.
 
최보식 선임기자는 아마도 8등급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기사에서 김도연 총장은 수능이 잘못된 시험이며 바칼로레아 시험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수능이나 교육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김도연 총장의 근거가 부정확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오류들은 수능 국어 성적이 낮은 것과 상관 관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무례한 생각이 잠시나마 들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 인터뷰에서 잘못된 내용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1) '적절한 것을 있는 대로 고른 것은?'이라는 발문은 복수 정답을 암시한다?


다섯 개 답 중에서 적절한 것 혹은 적절치 않은 것을 골라내는 방식입니다. 간혹 '적절한 것을 있는 대로 고르시오'라고 묻기도 합니다. '있는 대로'라면 답이 두 개 이상이라는 암시가 됩니다. 그런데 정답이 하나인 경우에도 그렇게 묻습니다. 정부가 학생들을 상대로 '꼼수'를 부리는 겁니다.
 
이런 유형의 문제를 '합답형 문제'라고 합니다. '적절한 것을 있는 대로 고른 것은?'의 답은 하나입니다. 적절한 것들의 부분집합은 정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분집합과 전체집합을 구분할 수 있는 학생이라면 이런 발문을 보고 정답이 두 개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2) 올해 국어 영역 만점자가 4%, 약 1000명이 넘는다?

이건 사고력 측정도 아니고, 문제를 배배 꼬아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수능시험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경쟁'이지요. 올해 국어 영역 만점자가 4%, 약 1000명이 넘는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그런 함정에 안 걸려들기 위해 얼마나 훈련을 했겠습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런 수능을 잘 본 학생을 '인재'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난센스입니다.
 
올해 수능 국어 만점자는 약 0.23%입니다. 수능 응시자가 60만명이기 때문에 그 중 4%라면 1000여명이 아니라 24,000명입니다.4%는 1등급 컷인데 만점자 비율과 혼동하신 것 같습니다.또한, 총장님 본인의 성적이 낮고 만점자가 적다는 것이 수능이 사고력 시험이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3)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은 3등급이며 점수를 부여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고교 졸업 자격 시험(바칼로레아)을 일주일간 치릅니다. 매우 우수, 우수, 양호의 3개 등급으로 부여하지 우리처럼 점수로 줄 세우지 않습니다. 점수 93점이나 94점은 다 잘한 거지, 무슨 실력 차이가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1점 차로 대학 당락을 결정합니다.

바칼로레아 시험은 절대 평가이고 등급제도 채택되어 있는 동시에 점수도 부여되는 시험입니다. 즉, 점수로 줄 세우기가 가능합니다. 바칼로레아는 시험 점수에 따라 평점(mention)이 붙습니다. 20점 만점에 10점~11점은 통과(passable), 12점~14점은 좋음(assez bien), 15점~17점은 훌륭함(bien), 18점 이상은 매우 훌륭함(très bien). 정말로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경우에는 시험관의 찬사(félicitation du jury)를 받기도 합니다. 즉 평점을 등급으로 본다면 3등급이 아니라 5등급인 셈입니다. 또한 프랑스에서도 엘리트 학교인 그랑제콜(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가려면 우리나라 수능 1등급과 마찬가지로 상위 4%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4) 수능은 일본 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우리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보기에 계속 '오지선다형' 수능으로 갑니다. 나라가 망해 가는데 젊은이들이 죽어가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입시제도는 일본을 모방한 겁니다. 그런 일본에서도 내년부터 200여개 학교에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적성시험인 수능 국어 시험과 학력시험인 일본의 센터시험은 다릅니다. 수능 이전의 학력고사가 일본의 대학입시센터시험을 모방한 것입니다. 현재의 수능은 일본의 센터 시험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SAT 시험을 모방한 것입니다. 초대 평가원장이자 수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박도순 교수님의 말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수능 형식의 시험에 대한 논의는 87년 전두환 정권 말기 때 암기식 교육을 없애자는 뜻에서 시작됐다. 이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 자문기관으로 교육개혁심의회가 구성돼 준비가 본격화됐다. 당시 그와 계명대 김영채 교수가 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SAT)과 유사한 ‘대학적성고사’를 제안했다. 그리고 90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이름이 정해졌다.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16499111)


 
저는 수능 국어 시험이 약간 변질되기는 했지만 훌륭한 사고력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수능 국어를 잘 보는 사람은 대개 정확한 언어와 사고를 구사하고,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며 지적으로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반영한 후에 이 글을 최보식 선임기자님과 김도연 총장님에게도 이메일로 보내겠습니다. 언론에 자신의 의견을 공표할 때에는 그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알 만한 분들이 왜 이러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