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1일 토요일

출제오류 시리즈(4) - 비밀주의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가?

안녕하세요. 메가스터디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규칙을 제압하는 1+3원칙의 이원준 강사입니다.

설 연휴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오늘 수학능력시험이나 법학적성시험 등을 출제하는 분들을 비판하려고 합니다.
사고력을 물어보는 시험을 출제하면서 왜 그걸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거죠?

고등학생들이나 대학생들은 적성시험을 잘 풀 줄 모릅니다.
그래서 출제기관에서 제대로 가이드를 해주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의 공부를 하게 됩니다.
불안하니까 배경지식을 파고들게 될 가능성이 커요.
또는 정확한 구문독해를 하는 대신 지문적중을 해준다는 강사나 비과학적인 속독법 등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즉, 목이 마르니까 마시면 안 되는 소금물을 마시게 됩니다.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을 소금물에서 해방시켜 줄 방법은 간단합니다.
깨끗한 물을 주면 됩니다.
적성검사의 출제원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교평과 연구단 같은 출제기관에서는
비밀주의의 벽이 너무나 높습니다.

연구단에서 발행한 <법학적성시험연구>의 2011학년도 법학적성시험 언어이해 11번 문제의 해설을 보면 참 슬픕니다.
비밀주의의 벽이 출제위원과 연구단 사이에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보여드리지 않고 해설부터 보여드리는 이유는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 법학적성시험연구, 2012년판
(위의 인용은 공익적, 학술적, 교육적 목적의 인용입니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위의 해설을 보면 정답이 4번입니다.
그런데 해설을 읽어보면 논리가 굉장히 장황하고 자의적입니다.
"어떤 위해가 가해질 수 있음을 암시하거나 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순간 바로 침해가 발생하게 되는 지위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원... 읽고도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천하의 아귀가 왜 이리 혓바닥이 길어?" ⓒ 타짜

왜 그러냐면 해설을 쓴 사람이 문제를 헷갈렸기 때문이죠.
지금 해설에 따르면 모든 선택지가 다 거짓입니다.



이 문제의 발문은 '적절한 것은?'입니다. 따라서 정답인 4번은 참인 선택지여야 합니다.

그런데 연구단의 연구원이 출제진이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해설을 쓰다가
어느 순간 발문의 '적절한 것은?'을 '적절하지 않은 것은?'으로 혼동한 것이죠.
그래서 답이 4번인 건 아는데 끼워맞춰야 하니까 궤변으로 점철된 해설이 나온 것입니다.
맞는 문장에서 최선을 다해 틀린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겠지요?

제가 이런 해설 오류들을 알려주기 위해 연구단에 전화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책임자와 통화를 하면서 제 신분을 밝혔는데
책임자는 냉랭하게 "우리는 지금 사교육과 전쟁을 하고 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간곡하게 "이걸 믿고 공부할 학생들을 위해서 오류를 잡아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지만
다음 해에 오류들이 수정되지 않고 동일하게 출판된 것을 보면서 황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에 오류들을 올리는 것이기도 하구요.
이 글이 앞으로 출제기관의 눈에 띄어서 출제 오류나 해설 오류를 피하기 위한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이 문제 자체에 대한 긴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비밀주의'의 폐해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 리트 문제는 연구단이 인쇄와 시험 운영 등을 맡고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를 맡은 것입니다.
리트의 공식적인 출제기관인 연구단에서 출판한 해설서가 틀렸다는 것은
출제위원들이 제대로 된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출제자료를 남겼다면 연구단이 이런 해설서를 썼을 리가 없죠.

그리고 이 해설서는 '출제기관'이 낸 '공식해설서'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요.
출제기관의 기출 해설서가 아니라 다른 강사의 기출해설서였다면 저도 이렇게 인용까지 하면서 비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출제위원과 출제기관 사이는 물론 출제위원 사이에도 이러한 비밀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그래서 노하우 공유나 축적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 교육현장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납니다.
너무나 기분 좋게 수업을 잘 했는데 알고보니 답을 잘못 알고 강의했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는
국어강사가 있는데, 국어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열심히 문제에 대한 해설을 하고 수업을 듣는 시늉만 할 뿐,
실제로는 아무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공부하는 시늉만 할 뿐 누구도 진지하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중에는 해설서가 넘쳐나지만 그 해설은 주먹구구식에 틀린 내용도 많고 불필요한 내용도 많은데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뭘까요?


ⓒ NORIFUSA MITA, 꼴찌 동경대 가다, 5권

배운 내용과 상관없이 어차피 시험을 볼 때는 각자 알아서 감으로 문제를 풀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장 큰 장벽은 학생과 출제기관 사이에 있습니다.
만일 교평이나 연구단이 다른 민간교육기관처럼 Q&A게시판을 운영했다면
이런 오류는 유지되지 않고 분명 수정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비밀주의의 폐해는 리트만 아니라 수능에도 있습니다.
최근 나온 EBS수능특강을 보니 정말 해설이 엉망이더군요. 해설 쓰는 거 참 쉽죠.
선택지 B가 맞는 것이고 근거가 A부분이면 'A이기 때문에 B이다.'라고 쓰고,
만일 선택지 B가 틀린 것이고 근거가 A부분이면 'A이기 때문에 B가 아니다' 또는
'A라고 해서 B는 아니다.'이렇게 쓰면 되니까요.
읽다보면 정말 극혐입니다. 선생님이라 불리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그러면 안 돼죠.




비밀의 벽은 출제기관과 교사들 사이에도 있습니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뀐 후에도 국어 교과서는 본질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학력고사와 수능은 다른데, 학력고사 시대 교과서와 수능 시대 교과서는 같은 이유가 뭡니까?
그럼 어떻게 교과서만으로 수능을 준비할 수 있다는 거죠?
국어교과서 저자(대부분 문학박사들)가 수능을 보면 만점 맞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왜 교수를 겸하는 시인들이 자기 시가 출제되었을 때 자꾸만 틀리는 거죠?
(최승호 시인, 황지우 시인, 오은 시인 등...)
그런데 꽤 유명한 수능 국어 인강강사는 시인의 성향을 외워서 문제를 풀라고 시킵니다.
정작 시인도 자기 시를 소재로 한 문제를 틀리는 판인데요.


출처 : 제가 한 학생에게 어제 받은 카톡입니다. 학생의 동의를 받고 올립니다.

수능 국어에 적합한 사고력을 가르치는 대신 어떻게든 수능 국어를 암기과목으로 바꿔서 가르치려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학원 강사들도 예외가 아니죠.
배경지식, 어휘, 어법, 작품감상, 문항별 풀이법, 유형별 독서법 등을 외우게 만들어서 강의시간을 늘려 돈을 벌려는 거죠.
누군가는 이런 걸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사고력도 늘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걸 암기해도 사고 능력 향상에 소용이 없다는 건 이미 충분히 입증된 사실입니다.
소금물도 물이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지 않습니까?
지금 방식이 소금물을 조금 주는 겁니까? 아예 염전 노예를 만들려는 거죠!

또는 지문적중을 해준다고 사기를 치는 강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적중이 안 되면 '무당처럼 맞출 수는 없다'라고 변명하지요.
(절대 사과도 안 합니다.)

수능 국어는 정보가 부족해 '소금물'이 팔리다보니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국어 교사가 신뢰를 잃게 되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 나오고, 옆에서 노는 것처럼 보이던 친구가 성적이 잘 나오니까요.
그래서 학생들이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게 되는데 국어 공부는 정말 중요합니다.
모든 과목의 기초가 되는 공부니까요.
예들 들어, 재수 성공을 예측할 때 가장 의미 있는 변수가 국어 성적입니다.
국어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 것은 국가경쟁력면에서 엄청난 손실입니다!

ⓒ NORIFUSA MITA, 꼴찌 동경대 가다, 5권


다음과 같은 평범한 국어수업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수능출제의 원리를 교사들이 모른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그 원리를 안다면 구문과 논증을 가르치지 아래와 같이 문학작품 품평회처럼 수업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늘 말하듯 시험은 미국식인데 가르치는 건 일본식인 겁니다.

ⓒ NORIFUSA MITA, 꼴찌 동경대 가다, 5권


수능 국어나 리트는 적성검사에 맞게 통합교과적으로 공부를 해야지 교과서나 참고서를 암기하면 안 된다고
출제기관이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평과 정부는 EBS-수능 연계로 참고서 암기를 부추기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비밀주의가 한국의 국어교육을 망치고 있습니다.
수능을 준비한다는 목적을 기준으로 평가해본다면,
교사도 학생도 타성에 젖어서 바보 같고 쓸데없는 국어공부를 하고 있으니까요.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수능의 목표는 다들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수능과 법학적성시험 출제위원은 다른 출제위원들, 출제기관, 학생들과 단절되어 있고
자주 교체되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출제위원은 출제기간이 되기 전에는 완전히 시험을 잊고 산다고 하더군요.
본업이 출제위원이 아니라 대학 교수니까요.


ⓒ NORIFUSA MITA, 꼴찌 동경대 가다, 5권

우리는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수능 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겠죠.
그럼 그 교사들은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국어교육과나 국문과 교수, 그리고 임용고시 강사들에게 배웠겠죠?
그런데 국어교육과 교수는 수능 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고 있나요?
만일 알고 있다면 그 교수는 누구고, 그 교수가 쓴 논문이나 책은 어디에 있죠?
근거를 제대로 묻지 않으면 비합리적인 관행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전문가니까 잘 알아서 하고 있겠거니 하면 황당한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학원에 가느라 귀가가 늦어지지 않도록 밤 10시까지 야자를 시킨다거나..)
왜냐하면 많은 전문가들은 순수하지 않거든요.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를 보면 임금님이 벌거벗고 행진할 때 왜 임금님의 신하들은 침묵하고 있었을까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을 했기 때문이겠죠.

지금 교육부나 교사, 출제기관 등이 적성평가 문제의 본질, 원리, 비밀을 명확하게 학생들에게 제시해주지 않는 것은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수능의 아버지 박도순 교수 인터뷰에서)

저야 저 동화에 나오는 소년처럼 '순수'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막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구요. ㅎㅎ
정책 결정자들이 사교육이랑 '전쟁'을 하려고 들지 말고 '도움'을 좀 받았으면 좋겠네요.



비밀주의에 대한 비판은 다음 글에서도 이어나가겠습니다.

2015년 2월 13일 금요일

출제오류 시리즈(2)-LEET, (3)-MEET


출제오류 시리즈 (2)

안녕하세요. 이원준 강사입니다.


오늘은 출제오류 시리즈 2번째 시간으로 LEET예시문항의 출제오류를 다뤄보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번에 제가 처음 제기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예시문항이다보니 시험을 치른 수험생도 없었고 이의제기도 없어서
출제오류가 있었더라도 드러나질 않았습니다.


이 출제오류 시리즈에는 학생들의 학습을 도우려는 의도도 있지만 출제오류를 줄이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출제오류가 있으면 똑똑한 학생들이 괜히 고생하거든요.


2009년 LEET예시문항 지문 (출처 : 교평)
   
    우수한 기업들이 그 선도적 지위를 어떻게 상실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와해성 혁신 이론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디스크 드라이브 산업을 연구한 결과 탄생했다. 그는 혁신적 기술을 기존 제품의 성능을 더욱 향상시키는 존속성 기술과, 초기 단계의 성능은 존속성 기술보다 떨어지지만 존속성 기술과 전혀 다른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존속성 기술이 가지고 있던 시장을 급격히 무너뜨리는 와해성 기술로 구분하였다.

 ​와해성 기술은 존속성 기술에 비해 그 성능이 미흡하지만 색다른 가치의 측면을 높이 평가받는 특징이 있다. 이 기술을 응용한 제품은 일반적으로 더 싸고 더 작고 더 단순하고 더 편리하다. 이러한 와해성 기술 역시 자체적으로 성능이 향상되어 당초의 존속성 기술 시장이 요구하던 수준에 도달하면, 그때부터 소비자를 급속히 흡수함으로써 존속성 기술이 가졌던 시장을 와해시키게 된다.





6. 와해성 기술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② 초기에는 시장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가 점차 기존의 시장을 점유한다.

③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기 때문에 높은 제품 가격을 형성한다.

 
   


(1) 점차
'급격히'라는 말은 빠르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느리다'는 의미를 가진 점차로 바꿔쓰면 의미가 반대가 됩니다.


(2) 높은
와해성기술이 존속성기술보다 가격이 더 싸다고 했으므로
와해성기술이 '높은' 가격이라고 하면 틀린 문장이 됩니다.


(3) 새로운
'새로운'이란 말은 '전에 있은 적이 없었던'이라는 뜻입니다.
'존속성 기술이 가지고 있었던 시장'이라면 전에 존재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이 아닙니다.


지문에 따르면 와해성 기술은 낮은 가격을 무기로 기존의 소비자들을 급격히 흡수합니다.
선택지에 나타난 중요 단어들을 이항대립으로 아래에 정리했습니다.
녹색은 맞는 단어이고 빨간색이 틀린 단어입니다.
(신호등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2번과 3번에 모두 빨간색 단어가 보이죠?
정답이 두 개란 이야기입니다.

이 문항은 출제오류가 있어서 복수정답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4) 가능한 반론
예전 시장이 와해되어 사라졌다고 가정한다면 와해성기술의 시장은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충분한 근거를 갖춘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문과 함께 제시된 그림에서 시장들을 그린 선이 연속적이라서
'기존의' 시장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출제자의 의도에 더 부합한다고 보았습니다.
'와해'된 것은 '시장' 자체가 아니라 '시장 점유율'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이 부분에서 '기존의'가 틀렸고 '새로운'이 맞다고 하더라도
②는 '점차'가 틀렸고 ③은 '높은'이 틀렸기 때문에 이 문항이 복수정답이라는 결론은 그대로입니다.


(5) 출제기관에의 건의
이 문항에 대해 교평은 답과 해설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회의록을 찾아보니 불필요한 논란을 예방하기 위해 해설을 공개하지 말자고 했는데
저는 그런 비밀주의가 더 큰 혼란을 일으킨다고 봅니다.
③을 정답으로 ②를 오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새로운 시장'을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새로운 소비자'로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정건의안
②(오답) 초기에는 시장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가 급격히 기존의 소비자를 점유한다.
③(정답)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기 때문에 높은 제품 가격을 형성한다.


아마도 예시문항은 실제문항보다 출제 인원도 적고, 긴장감도 떨어져서 이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부디 출제 기획의원들이 이 글을 모니터링하셔서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피하셨으면 합니다. 


나중에 다룰 PEET예시문항의 출제오류에 대해서는 교평에 연락해서 피드백을 받은 바가 있지만
이 LEET예시문항에 대해서는 아직 피드백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만일 출제기관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면 기쁘겠네요.


출제오류 시리즈 (3)

안녕하세요. 이원준 강사입니다.
오늘은 출제오류 시리즈 세 번째로 2008MEET 언어추론 11번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2008MEET 언어추론 11번)
패러데이의 독창적인 개념을 수학화할 수 있음을 보인 인물이 맥스웰이다. 그는 공간을 메우는 매질이 어떤 방식으로 변형되어 전자기적 영향력이 전파되는지를 수학적인 형태로 표현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는 당시에 전자기 현상에 대해 알려진 것 대부분을 몇 개의 맥스웰 방정식의 체계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맥스웰 방정식은 서로 결합되었을 때, 광속으로 공간을 퍼져 나가는 전자기적 파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예측해 줌으로써 빛이 일종의 전자기파라는 발견에 이르게 하였다. 처음에 맥스웰은 이 방정식들을 구축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공간을 메우는 연속체의 역학적 모형들을 동원하였지만, 방정식들만으로 관련된 모든 현상을 기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실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되자 그 모형들을 폐기했다. 이로써 그의 방정식이 표현하는 전자기장은 어떤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궁극적인 실재가 되었다. 이렇게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역학적 함축을 벗어 버렸고, 연속적 장 개념은 물리적 실재를 기술하는 새로운 방법으로서 이후 물리학에 근본적인 변혁을 유발하는 토대가 되었다.

위 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65%)
 
① 뉴턴의 공간은 비어 있으나 맥스웰의 공간은 매질로 채워져 있다.


 
   


 ① 을 출제기관은 맞는 문장으로 보았습니다.
뉴턴의 공간이 비어 있는 것은 여기서 제시되지 않은 지문 앞 부분에 분명히 나와 있으니 문제되지 않습니다.
쟁점이 되는 부분은 이 문장의 뒷부분 '맥스웰의 공간은 매질로 채워져 있다."입니다.


지문을 살펴보면 맥스웰은 초기에는 패러데이와 마찬가지로 '매질'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녹색으로 표현한 부분입니다.)
매질이 변형되면서 전자기적 영향력이 전파된다면 매질도 당연히 있어야겠지요.
없는 것이 변형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문제는 빨간 색으로 표시한 뒷부분입니다.
맥스웰은 처음에는 공간을 매우는 연속체를 가정했지만 이 모형을 폐기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연속체란 '매질'을 말합니다.
따라서 전자기장은 어떤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궁극적인 실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언어적이나 논리적 관점으로 볼 때 "맥스웰의 공간은 매질로 채워져 있다"라는 말은 거짓이 됩니다.
왜냐하면 초기 맥스웰의 공간은 매질로 채워져 있었지만 후기 맥스웰의 공간은 전자기장으로 채워져 있고 매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A가 B일 때도 있고 B가 아닐 때도 있다면, A가 B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겠지요.
따라서 이 문항은  출제오류를 가진 문항입니다.


 초기 맥스웰의 공간후기 맥스웰의 공간 
 매질로 채워져 있음  매질로 채워져 있지 않음



원칙대로라면 복수정답이 인정되었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갔습니다.
출제자는 아마도 머릿속에서 입자론 : 파동론의 이항대립은 염두에 두었지만
파동론 속에서 맥스웰의 전기와 후기의 차이는 지문 속에 명시되었는데도 간과한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출제자가 이 글을 읽는다면 꼭 참고하셔서 다음에는 실수가 없도록 해 주십시오.
정확하게 독해한 능력 있는 친구가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되니까요.


복수정답이 없도록 수정한다면 아래와 같이 수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① 뉴턴의 공간은 비어 있으나 초기 맥스웰의 공간은 매질로 채워져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resonanceswavesandfields.blogspot.kr/2011/07/deriving-electromagnetic-wave-equation.htm
l




참고로 이 지문에 대한 물리적인 의미도 언급해보죠.
적성시험에서 중요한 본질은 언어적, 논리적 형식입니다.
그러나 내용에 대해서도 우리가 궁금증을 갖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배경지식이 본질이라는 착각에만 빠지지 않으면 리트나 수능, PSAT 같은 적성시험을 준비하면서 배경지식을 조금 쌓는 것이 나쁠 리 없죠. 안타까운 점은 한 8:2정도로 노력을 나눠서 언어적인 것에 8정도 집중하고 배경지식은 한 2정도 공부하면 되는데, 암기식 학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적성시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과 선생들이 배경지식에 너무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전자기장의 구성성분은 광자입니다.
보통 파동의 속도는 매질에 대한 속도로 정의됩니다.
그런데 맥스웰 방정식 속에는 매질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전자기파(빛)가 에테르라는 매질을 통해 전파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맥스웰에 따르면 전자기장은 에테르라는 매질을 통해 전파되는 파동이라고 환원할 필요 없이 그냥 전자기장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광속으로 공간을 퍼져나가는 전자기적 파동'에서 광속이라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한 속도일까요?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맥스웰 방정식에서 속도의 기준이 필요없는 것은 광속이 기준에 상관없이 항상 일정하기 때문입니다.
즉, 맥스웰 방정식의 해석을 통해 아인슈타인은 빛이 모든 것에 대해서 광속이라는 것을 추론했습니다.
그래서 맥스웰 방정식이 상대성이론의 토대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