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제압하는 1+3원칙의 이원준 강사입니다.
설 연휴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오늘 수학능력시험이나 법학적성시험 등을 출제하는 분들을 비판하려고 합니다.
사고력을 물어보는 시험을 출제하면서 왜 그걸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거죠?
고등학생들이나 대학생들은 적성시험을 잘 풀 줄 모릅니다.
그래서 출제기관에서 제대로 가이드를 해주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의 공부를 하게 됩니다.
불안하니까 배경지식을 파고들게 될 가능성이 커요.
또는 정확한 구문독해를 하는 대신 지문적중을 해준다는 강사나 비과학적인 속독법 등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즉, 목이 마르니까 마시면 안 되는 소금물을 마시게 됩니다.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을 소금물에서 해방시켜 줄 방법은 간단합니다.
깨끗한 물을 주면 됩니다.
적성검사의 출제원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교평과 연구단 같은 출제기관에서는
비밀주의의 벽이 너무나 높습니다.
연구단에서 발행한 <법학적성시험연구>의 2011학년도 법학적성시험 언어이해 11번 문제의 해설을 보면 참 슬픕니다.
비밀주의의 벽이 출제위원과 연구단 사이에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보여드리지 않고 해설부터 보여드리는 이유는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 법학적성시험연구, 2012년판
(위의 인용은 공익적, 학술적, 교육적 목적의 인용입니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위의 해설을 보면 정답이 4번입니다.
그런데 해설을 읽어보면 논리가 굉장히 장황하고 자의적입니다.
"어떤 위해가 가해질 수 있음을 암시하거나 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순간 바로 침해가 발생하게 되는 지위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원... 읽고도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천하의 아귀가 왜 이리 혓바닥이 길어?" ⓒ 타짜
왜 그러냐면 해설을 쓴 사람이 문제를 헷갈렸기 때문이죠.
지금 해설에 따르면 모든 선택지가 다 거짓입니다.
이 문제의 발문은 '적절한 것은?'입니다. 따라서 정답인 4번은 참인 선택지여야 합니다.
그런데 연구단의 연구원이 출제진이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해설을 쓰다가
어느 순간 발문의 '적절한 것은?'을 '적절하지 않은 것은?'으로 혼동한 것이죠.
그래서 답이 4번인 건 아는데 끼워맞춰야 하니까 궤변으로 점철된 해설이 나온 것입니다.
맞는 문장에서 최선을 다해 틀린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겠지요?
제가 이런 해설 오류들을 알려주기 위해 연구단에 전화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책임자와 통화를 하면서 제 신분을 밝혔는데
책임자는 냉랭하게 "우리는 지금 사교육과 전쟁을 하고 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간곡하게 "이걸 믿고 공부할 학생들을 위해서 오류를 잡아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지만
다음 해에 오류들이 수정되지 않고 동일하게 출판된 것을 보면서 황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에 오류들을 올리는 것이기도 하구요.
이 글이 앞으로 출제기관의 눈에 띄어서 출제 오류나 해설 오류를 피하기 위한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이 문제 자체에 대한 긴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비밀주의'의 폐해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 리트 문제는 연구단이 인쇄와 시험 운영 등을 맡고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를 맡은 것입니다.
리트의 공식적인 출제기관인 연구단에서 출판한 해설서가 틀렸다는 것은
출제위원들이 제대로 된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출제자료를 남겼다면 연구단이 이런 해설서를 썼을 리가 없죠.
그리고 이 해설서는 '출제기관'이 낸 '공식해설서'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요.
출제기관의 기출 해설서가 아니라 다른 강사의 기출해설서였다면 저도 이렇게 인용까지 하면서 비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출제위원과 출제기관 사이는 물론 출제위원 사이에도 이러한 비밀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그래서 노하우 공유나 축적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 교육현장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납니다.
너무나 기분 좋게 수업을 잘 했는데 알고보니 답을 잘못 알고 강의했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는
국어강사가 있는데, 국어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열심히 문제에 대한 해설을 하고 수업을 듣는 시늉만 할 뿐,
실제로는 아무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공부하는 시늉만 할 뿐 누구도 진지하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중에는 해설서가 넘쳐나지만 그 해설은 주먹구구식에 틀린 내용도 많고 불필요한 내용도 많은데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뭘까요?
ⓒ NORIFUSA MITA, 꼴찌 동경대 가다, 5권
배운 내용과 상관없이 어차피 시험을 볼 때는 각자 알아서 감으로 문제를 풀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장 큰 장벽은 학생과 출제기관 사이에 있습니다.
만일 교평이나 연구단이 다른 민간교육기관처럼 Q&A게시판을 운영했다면
이런 오류는 유지되지 않고 분명 수정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비밀주의의 폐해는 리트만 아니라 수능에도 있습니다.
최근 나온 EBS수능특강을 보니 정말 해설이 엉망이더군요. 해설 쓰는 거 참 쉽죠.
선택지 B가 맞는 것이고 근거가 A부분이면 'A이기 때문에 B이다.'라고 쓰고,
만일 선택지 B가 틀린 것이고 근거가 A부분이면 'A이기 때문에 B가 아니다' 또는
'A라고 해서 B는 아니다.'이렇게 쓰면 되니까요.
읽다보면 정말 극혐입니다. 선생님이라 불리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그러면 안 돼죠.
비밀의 벽은 출제기관과 교사들 사이에도 있습니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뀐 후에도 국어 교과서는 본질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학력고사와 수능은 다른데, 학력고사 시대 교과서와 수능 시대 교과서는 같은 이유가 뭡니까?
그럼 어떻게 교과서만으로 수능을 준비할 수 있다는 거죠?
국어교과서 저자(대부분 문학박사들)가 수능을 보면 만점 맞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왜 교수를 겸하는 시인들이 자기 시가 출제되었을 때 자꾸만 틀리는 거죠?
(최승호 시인, 황지우 시인, 오은 시인 등...)
그런데 꽤 유명한 수능 국어 인강강사는 시인의 성향을 외워서 문제를 풀라고 시킵니다.
정작 시인도 자기 시를 소재로 한 문제를 틀리는 판인데요.
출처 : 제가 한 학생에게 어제 받은 카톡입니다. 학생의 동의를 받고 올립니다.
수능 국어에 적합한 사고력을 가르치는 대신 어떻게든 수능 국어를 암기과목으로 바꿔서 가르치려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학원 강사들도 예외가 아니죠.
배경지식, 어휘, 어법, 작품감상, 문항별 풀이법, 유형별 독서법 등을 외우게 만들어서 강의시간을 늘려 돈을 벌려는 거죠.
누군가는 이런 걸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사고력도 늘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걸 암기해도 사고 능력 향상에 소용이 없다는 건 이미 충분히 입증된 사실입니다.
소금물도 물이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지 않습니까?
지금 방식이 소금물을 조금 주는 겁니까? 아예 염전 노예를 만들려는 거죠!
또는 지문적중을 해준다고 사기를 치는 강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적중이 안 되면 '무당처럼 맞출 수는 없다'라고 변명하지요.
(절대 사과도 안 합니다.)
수능 국어는 정보가 부족해 '소금물'이 팔리다보니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국어 교사가 신뢰를 잃게 되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 나오고, 옆에서 노는 것처럼 보이던 친구가 성적이 잘 나오니까요.
그래서 학생들이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게 되는데 국어 공부는 정말 중요합니다.
모든 과목의 기초가 되는 공부니까요.
예들 들어, 재수 성공을 예측할 때 가장 의미 있는 변수가 국어 성적입니다.
국어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 것은 국가경쟁력면에서 엄청난 손실입니다!
ⓒ NORIFUSA MITA, 꼴찌 동경대 가다, 5권
다음과 같은 평범한 국어수업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수능출제의 원리를 교사들이 모른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그 원리를 안다면 구문과 논증을 가르치지 아래와 같이 문학작품 품평회처럼 수업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늘 말하듯 시험은 미국식인데 가르치는 건 일본식인 겁니다.
ⓒ NORIFUSA MITA, 꼴찌 동경대 가다, 5권
수능 국어나 리트는 적성검사에 맞게 통합교과적으로 공부를 해야지 교과서나 참고서를 암기하면 안 된다고
출제기관이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평과 정부는 EBS-수능 연계로 참고서 암기를 부추기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비밀주의가 한국의 국어교육을 망치고 있습니다.
수능을 준비한다는 목적을 기준으로 평가해본다면,
교사도 학생도 타성에 젖어서 바보 같고 쓸데없는 국어공부를 하고 있으니까요.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수능의 목표는 다들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수능과 법학적성시험 출제위원은 다른 출제위원들, 출제기관, 학생들과 단절되어 있고
자주 교체되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출제위원은 출제기간이 되기 전에는 완전히 시험을 잊고 산다고 하더군요.
본업이 출제위원이 아니라 대학 교수니까요.
ⓒ NORIFUSA MITA, 꼴찌 동경대 가다, 5권
우리는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수능 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겠죠.
그럼 그 교사들은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국어교육과나 국문과 교수, 그리고 임용고시 강사들에게 배웠겠죠?
그런데 국어교육과 교수는 수능 국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고 있나요?
만일 알고 있다면 그 교수는 누구고, 그 교수가 쓴 논문이나 책은 어디에 있죠?
근거를 제대로 묻지 않으면 비합리적인 관행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전문가니까 잘 알아서 하고 있겠거니 하면 황당한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학원에 가느라 귀가가 늦어지지 않도록 밤 10시까지 야자를 시킨다거나..)
왜냐하면 많은 전문가들은 순수하지 않거든요.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를 보면 임금님이 벌거벗고 행진할 때 왜 임금님의 신하들은 침묵하고 있었을까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을 했기 때문이겠죠.
지금 교육부나 교사, 출제기관 등이 적성평가 문제의 본질, 원리, 비밀을 명확하게 학생들에게 제시해주지 않는 것은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수능의 아버지 박도순 교수 인터뷰에서)
저야 저 동화에 나오는 소년처럼 '순수'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막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구요. ㅎㅎ
정책 결정자들이 사교육이랑 '전쟁'을 하려고 들지 말고 '도움'을 좀 받았으면 좋겠네요.
비밀주의에 대한 비판은 다음 글에서도 이어나가겠습니다.